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혼을 두 번 한 배우 방은희, 강제로 혼인신고를 받았다는데요? 이렇게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정말 인간일까요?

스타

by Mr.속보 2023. 5. 7. 12:44

본문

반응형

최근 인기를 끄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돌싱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합니다. '돌싱'은 이혼 후 혼자 사는 사람을 뜻하며, 저희 사회에서는 이제 이혼을 부정적이고 잘못된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돌싱이 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혼 후의 삶이 항상 밝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몇몇 분들은 성급한 이혼을 후회하며, 또 다른 분들은 이혼 후 생존의 벽에 부딪혀 깊은 우울과 자기의 늪에 빠지기도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배우 방은희도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었으며, 아들의 돌잔치 때 시댁 식구들과 아들을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방울이는 1967년에 16살 어머니와 25살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워낙 보수적이라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할 수 있는게 없어 자신이 여자로 태어난 걸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학창시절 눈이 안 좋아져 안경을 착용하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여자가 안경을 쓴다는 것을 거부하여 이를 막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어릴 때 할머니에게 버림받은 후 4살 때부터 거의 혼자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후로는 여자를 증오하게 되고, 심지어 본인의 딸마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억압으로 인해 방울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항상 째려보는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리하여 방울이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는데 온영의 충고가 필요합니다. 

약 3달에 한 번씩, 아버지께서 집에 오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날 우연히 엄마가 집을 비운 상황이었다면, 방언이는 나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방언이는 연극 공연을 보고 연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녀는 마음먹고 아버지께 연극배우가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결심에 대해 아버지께서는 이해를 하지 못하셨습니다. 어디 여자가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다닐 수 있겠느냐며, 그녀를 쫓아냈습니다.

그 이후로 방언이는 아버지를 보지 않으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녀가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병원에 가서 아버지께서 방언이를 보고 깜짝 놀란 눈으로 기운을 차리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만큼은 안 올 줄 알았다. 와줘서 고맙다. 수고했다. 그리고 딸을 미워했던 이유로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원망 때문이었다.” 사용자님의 글을 읽고 친절한 톤으로 다시 작성해보았습니다. 원하는 대로 글의 뜻은 바뀌지 않았으며, 헤더, 불릿, 체크박스 등의 마크다운 포맷도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괜히 너까지 원망해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한 뒤 세상을 떠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연극과를 졸업한 뒤 1989년 '장군의 아들'로 영화 데뷔를 하였고, 이후 많은 작품에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방은희의 무당 연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녀가 영화 포스터를 잡고 있는 것을 싫어해서 모두 불태워버리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은희는 첫 번째 남편 성씨를 만나서 33일 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고, 그 후 두 사람은 함께 많은 방송에 출연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결혼한지 2년 만에 파경이 오게 되었고, 그 사실이 처음으로 알려진 건 아들의 돌잔치 때였습니다. 그 날에는 많은 연예인 분들도 참석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돌잔치는 축하와 흥겨움으로 가득 찬 자리인데, 그 날은 달랐습니다. 썰렁한 분위기에 하객들은 어색하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당연히 남편이 함께 손님들을 맞아야 할 행사에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아들의 돌잡이 행사가 있기 직전에는 홀 입구에서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막장스러운 장면이 연출되고 말았습니다.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이 나타나서 아이를 데려가야겠다며 갑자기 들이닥쳤는데, 그녀에게서 아이까지 빼앗으려 하자 친정 식구들이 고함을 지르고 그녀는 아이를 뺏기지 않기 위해 꼭 껴안고 있었습니다. 

이 때, 돌잔치에 참석한 한 연예인에 따르면 처음부터 남편이 안 보였다고 하니까, 이 남편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녀가 다음에 말해줄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왜 굳이 돌잔치를 했는지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녀는 일생에 한 번뿐인 아들의 돌잔치를 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2003년 5월 이혼을 하긴 했지만, 그 전부터 마음이 고생이었습니다. 

결혼을 하는 순간부터 갈등이 있었는데, 남편의 사업이 잘 안돼서 위로를 해봤지만 나에게 뭔가를 바랬는지 위로의 말만 하자 반응이 냉랭했습니다. 그러던 중, 드라마를 찍는 사이에 못 살겠다며 내가 그렇게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끝내 가방을 싸들고 나가버렸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방송에 나가면 "우리 행복해요"라고 말하며 어쨌든 가정을 지키려고 했지만 결국 헤어졌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첫 번째 결혼은 정말 너무 성급한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이 원만하게 유지되려면 남편이 아내보다 잘 돼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능력이 있어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되면, 어디서든 문제는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진 후 그녀는 홀로 아들을 키워야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결혼을 했지만, 그의 아들은 그 때 2살이 되던 시기에 남자 어른을 보면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부터도 그 아들이 "아빠"라고 불러 매달리는 모습이 생각나면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아들에게 "아빠"라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재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사랑보다는 그냥 열심히 노력하면 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지만, 그러던 중 두 번째 남편을 만나게 됩니다. 두 번째 남편은 연예계획사 4장으로 드라마 제작 미팅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첫 만남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방언이의 근황을 물어보자 하던 중, 한 남자가 갑자기 부탁을 하게 됩니다. 그는 시골에 연루하신 팔순 노모가 계시는데, 여자친구 행세를 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집까지 가서 인사를 드리게 되고, 이번에도 만난지 딱 한 달 만에 혼인신고를 하고 같이 살게 됩니다. 

그리고 또 이번에도 두 분은 여러 방송을 통해 잉꼬부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셨고, 많은 분들이 부러워하셨습니다. 하지만 9년 뒤, 다시 이혼을 발표하게 되어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그녀가 고백하길 "내가 이런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처음 결혼 생활을 실패하고 재혼을 결심한 이유는 솔직히 우리 아이한테 아빠의 존재가 있었으면 하는 게 제일 컸다"고 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두 번째 남편을 알게 되었는데, 남편이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태생이 사업가라 목표가 정해지면 돌진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사실 남편이 나와는 상의도 없이 갑자기 한 달 만에 혼인신고를 해버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너무 모르다 보니 부부 생활도 전혀 없었고, 사실 남편이 많이 무서웠습니다.

 


또한 참 신기한 건, 당시 드라마 제작팀에서 혹시 남편이 그 분이 맞냐고 물어봤을 때, 맞다고 하면 희한하게도 번번이 드라마에서 출연이 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밖에서 일을 하고 일주일에 5번 일하는 것 같습니다. 

이상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는데 입에 접착제를 붙였는지, 집에 오면 대화는 커녕 하만이랑도 일쑤였다. 그러다 내가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라고 물어보니 "내일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마. 내가 무슨 일 하는지도 모르잖아" 라고 하며 그저 하만 냈었다. 

결국 그 이후로는 남편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앞서 얘기한 대로 부부생활도 나의 마음을 넘어서 그런 걸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생각에 대화도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또 한번은 남편이 취해서 집에 들어왔는데, 휴대폰에 불이 들어오길래 우연히 봤는데 거기에 "오빠 어디야? 오빠 뭐 해?" 그런 문자가 있었다. 그래서 하루는 내가 이런 식으로 문자가 와서 봤다고 했더니 "한 남자가 사업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라고 하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그래서 결국 이때도 뭐 그래야 되나 보다 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또 한 번은 사는 게 너무 힘들고 답답해서 기분 전환 겸 운동이나 취미를 찾다가 스쿠버 다이빙을 알게 되어 자격증을 취득했다. 

취득까지 준비하게 되었어요. 원래 저는 고소공포증과 폐쇄공포증이 있는데, 이 깜깜한 바다 속에서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그래도 너무 좋았어요. 

 


결국 라이센스까지 따게 되어 정말 기뻤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나 있잖아 연극을 처음 했을 때처럼 심장 두근거림이 생기면서 이제 너무너무 살아 있는 것 같아요. 무언가 하고 싶은게 생겼다고 했는데, 그런데 남편이 "그래서 오버하지 마세요" 라고 하더라구요. 

저희 부부는 서로를 잘 모르고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아요. 같이 있어도 오히려 혼자 있는 것보다 더 외롭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결국 참다 참다 우리 아들 중학생 때였는데, 아들에게 이혼을 하면 네가 힘들겠지 라고 물어봤어요. 

그러자 아들이 "엄마 나 때문에 그러지마" 하면서 내 마음부터 먼저 헤어지는데, 그렇게 저는 외로운 걸 싫어해서 여자로서 살고 싶어서 이혼했어요. 얼마 전에 전 남편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좋은 분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상대방에게 말문을 맡기지 말고, 웃음을 읽게 하지 말고, 서로 함께 웃으며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저는 지금까지 결혼을 실패한 이유가, 제가 배우자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는 것이, 일상을 함께 나누는 기쁨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앞으로 또 누군가를 만난다면, 뼈까지 알아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한편, 방은희 씨의 인생 이야기를 금쪽 상담소에서 모두 들어주셨는데, 이에 대해 5년 박사가 진단하신 것은, 방은희 씨가 어릴 적부터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에 결혼을 빨리 하고자 했고, 그에 따른 안 좋은 결과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사랑은, 단순히 공부를 잘해 예쁜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에서.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