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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 모든 방송에서 하차? 외국 이민 결심한 이유에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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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속보 2023. 5. 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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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보면,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고난과 행복이 있는 한편의 드라마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배우 김청이 아침마당 하요 초대석이라는 코너에 나와 롤러코스터 같은 내 인생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한때 대한민국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연예인 2위에 올랐음에도 밤마다 술만 마시며 배우로서 살아가는 게 여자로서 너무 힘들어져서 기억상실증까지 와버린 적이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이 싫고 방송도 하기 싫어서 이민까지 결정해야 했던 김천의 인생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김청의 어머니 김도희씨는 어린 시절 자전거를 태우며 김청을 예뻐해 주던 동네 아저씨 김청의 아버지와 연애하던 여고생입니다. 그러나 양가에서는 서로 자식 단속을 탓하며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사생화로 김청을 낳게 됩니다. 그러나 김청의 아버지는 어른들 몰래 자신과 똑같이 생긴 딸을 보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며 부모님들을 설득해서 결혼을 승낙받았습니다.

 

김청의 어머니는 너무 어렸을 때 결혼을 하게 되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식을 누구보다 기다리던 어린 아내에게 달려가던 중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를 당해 김청의 아버지는 2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고로 그녀의 어머니는 첫사랑인 아버지를 못 잊어 이후에도 재혼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영혼 결혼식까지 올려 그리움을 달랬다고 하네요. 이후 시댁에서는 아들이 남긴 유일한 후계자 김청을 데려가겠다고 하자, 떨어져 산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그녀의 어머니는 결국 남편도 없이 시댁에 들어가 살며 매우 힘들게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시 시댁에서는 며느리 때문에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해 굉장히 미워하며 아이만 남겨놓고 떠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견디지 못한 그녀의 어머니가 고작 스무살의 나이로 세 살 백이 김청은 없고 야반도주를 하게 됩니다. 이후부터 어머니가 시댁을 나와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홀몸으로 긴청을 기르게 되었으며, 외갓집이 부유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김청은 혐모스라에서도 갖고 싶은 건 다 가질 수 있을 만큼 굉장히 부유하게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보모가 두 명이 있었고, 학창 시절엔 본인만 외제보온 도시락에 친구들 밥까지 따로 싸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심지어 기성복이 없던 시절에는 종로 샤넬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친구가 떡볶이를 사줄테니 함께 MBC 대회에 출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따라갔던 그녀는, 친구가 떨어지고 본인이 덜컥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해당될 수상자의 특혜로 MBC 14기 공채 탤런트가 되었다고 합니다.

 

왕조위를 닮은 세련된 외모와 똑부러지는 성격으로 단숨에 톱스타 반열에 오르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그녀가 백화점에서 사인회를 하면 너무 많은 인파가 멀리와 백화점 셔터를 내리게 할 정도로 대단했고,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연예인 2위까지 오르며 연예계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그녀의 어머니가 가장 신뢰하던 사람에게 잘못된 보증을 받아 1981년에는 30억이라는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어머니의 빚을 갚기 위해 그 돈을 구경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청하씨는 "아무래도 네가 우울증이 온 것 같은데, 같이 병원에 가보자"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에 손을 내밀어주었고, 배우로서 사는 것과 여자로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했습니다. 매번 어려울 때마다, 그녀 곁에는 엄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인지, 김청씨는 엄마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3살 때, 선배의 추천으로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남자와 맞선을 보게 됩니다. 금세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준비하게 된 김청씨였지만, 이 사랑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화가 나는 기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그 남자는 매일마다 전화를 걸어 "사랑해, 사랑해"라고 말하며 결혼도 일사천리로 준비하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전화 통화도 제대로 하려 하지 않고 쎄한 느낌을 줄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청씨는 그 남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당시 가장 잘 나가던 후배 연기자 최모씨와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되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총각인 줄 알았던 그 남자가 이혼을 한 뒤 재혼한 남성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사실이 김청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그녀는 이 남성과의 인연이 전생에 악연이었나 싶을 정도로 슬펐습니다. 결국 이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헤어진 후 5개월이 지난 어느 날, 체모 후배가 이 남성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에 연예부 기자들이 김청의 집을 찾아와서 두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김청이 이 남성과 이미 헤어졌다는 사실과 사람 사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기자들은 김청의 집에서 3박 4일을 머물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했습니다. 숙식 문제도 해결했고,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그 남자를 뺏었는지, 차지했는지, 혹은 차이는지 등등 끊임없이 질문을 했던 김청 연적이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후배 연기자에게 애인을 빼앗긴 김청의 남자를 내주기로 결정하게 되었고, 기사들은 이 사실을 전국적으로 공개했습니다. 그녀는 이후 집 밖에 나가지 못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사건이 잊혀지기 시작할 즈음 그녀에게는 마침내 제대로 된 남자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고백하면서 그 남자를 너무 사랑했고, 그 남자를 놓친 것은 이제까지도 후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2017년 현재, 그녀는 아직도 그 남자를 생각하며, 첫사랑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결혼 이야기도 나왔었지만, 집안의 부모님들이 그 결혼을 허락하지 않아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연예인이자 홀어머니 밑에 계신 분이라는 이유로, 그녀는 대놓고 싫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으로부터 뭔가 못마땅한 것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 그녀는 그 남자에게 못되게 굴었고 결국 헤어졌습니다. 이때 나는 내 성격에 참을 수 없어 그 사람에게 복수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실제로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이 사람은 다시 나의 인생에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첫사랑과 헤어진 후, 나의 37살 때 여러 사람들이 있는 술자리에서 평소 친분이 있던 언니가 그 골프장 사장님이라며 한 남자를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그녀보다 12살이 많았기 때문에 그저 중년의 아저씨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부터 김정씨는 독신주의자이신가요라며 다정하게 말을 걸고 그녀의 대답에 허허 웃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 남자에게서 연락이 오면서 그녀 역시 바쁜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달이 지나자 그 남자는 김청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김청은 이에 기쁨에 떠들썩해져 주위 사람들에게도 결혼 소식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특히, 결혼하라고 성화를 하던 어머니까지 걱정을 하며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데, 겨우 한 달 만났는데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 수 있겠냐"며 반대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김청은 걱정을 뒤로하고 결혼 날짜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결혼 날짜가 다가올수록,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이에 대해 김청이 고백하길, 나는 첫사랑과 이별로 인해 그저 일도 싫고 사람도 싫고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취자기 하는 심정으로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사람과 결혼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선택을 하게됐지만, 결혼식 직전까지 주위에서 그 남자에 대한 이상한 얘기가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직전까지 신부 대기실에서 고민을 하다 결국 결혼식을 올린 것은 그녀 스스로의 선택이었습니다. 이후 신혼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카지노 게임에 푹 빠져 3박 4일 동안 김청을 방치했습니다. 이렇게 막장한 상황에서도, 내가 언제든지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으로 결혼식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결혼생활이 잘 안 풀려서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 하다가 3일째 되는 날 쓰러지게 되는데, 결국 그때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그때부터 생각이 드는 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왜 여기에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결국 신혼여행지에서 혼자 한국으로 건너와 곧장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37년 동안 홀로 키운 딸이 신혼여행을 떠난 지 3일 만에 초췌한 몰골로 돌아오자, 당시 어머니는 가슴을 치며 한탄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그 남자가 병원에 와서 한다는 말이, 정리하려면 패물도 돌려줘야지, 내가 준 보석 반 어디에 있냐며 끝까지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런데, 심지어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이미 네 번 정도 결혼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당시 그것도 속인 상태로 접근했던 것이었고, 아무튼 다행히 두 사람은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기에 헤어지는 데 있어 그저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 절차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후유증은 컸던 게, 이때 충격으로 이후 이모가 강원도의 작은 절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무료 6개월간 외부와의 연락을 일체 끊고 밤마다 술을 마셨던 저는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는 상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저를 떠날 때는 지내던 방에서 빈 소주병이 무려 8박스나 나왔다고 합니다. 김천 그녀는 20대 때 어머니가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30억이라는 큰 빚을 지게 되었고, 결국 홀로 13년간 빚을 갚아야 했습니다.

 

또한, 두 번의 가슴 아픈 사랑으로 인해 그녀는 술에 의존하며 단기 기억상실증이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제는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노후를 위해 오피스텔 7채를 사들인 그녀는 부실공사를 일으켜 오피스텔 관계자들과 매우 강한 대립을 겪었지만, 결국 그녀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당시 김천 그녀는 현장 소장에 대한 모든 오이와 루머에도 불구하고 괴롭혀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녀는 대한민국이 싫어지고 방송을 하기 싫어하는 불쌍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결정을 확고하게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민을 결정하고 해외로 떠나게 된 그녀가 선택한 나라는 우즈베키스탄이었습니다. 그녀는 무려 2년간 한국을 떠나 우즈베키스탄에서 생활하며 엄마에게 의지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강인한 의지와 열정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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