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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 상속포기로 빈소가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전 재산을 모두 잃고 맨몸으로 남아, 과연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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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속보 2023. 5. 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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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 당시 미국에 있던 故 고현미의 두 아들이 비보를 듣고 귀국했다. 유명 작곡가 현미는 작곡가 이봉조와 사이에서 두 아들 이용곤과 이영준을 낳았다. 큰아들 이용곤은 곤이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했고 현재 미국에서 부동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남 이영준은 인기가수 원준이의 남편으로도 알려져 각종 방송에 출연했다.

 

이용곤은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모친의 장례식장에서 취재진을 만나 어머니가 대중에게 인기가수였음에도 집에서는 그저 평범한 어머니였다고 고백했다. 미국에 있을 때 어머니가 아침저녁으로 늘 전화를 하셔서 건강 조심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특히 그녀가 혼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제 자식이 둘이나 있고, 식구들도 많은데 혼자 떠나신 것은 저의 인생에 불공평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제가 행복해야 한다며 문자로 자주 연락을 주셨는데, 주변에서 제 어머니와의 대화를 보고 여자친구냐고 물어보는 정도로 다정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 동생과 함께 연락하는 것을 유일한 위안으로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별세 이후, 이렇게 많은 분들께서 애도와 안타까움을 표하시며 비로소 어머니가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 깊이 기억되는 가수로 남게 되었다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가 바라시던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편, 현미의 두 아들은 이범주의 호족에 속하지 못해, 단 한 푼도 상속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이봉조와의 재산 분쟁을 두려워해 아버지께서는 이에 대해 싫어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고현미는 생전에 "내가 이봉조 씨와 함께 살 때는, 어떤 것 하나도 제 이름으로 된 게 없었고, 모든 것이 남편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맨발로 아이들 손을 잡고 도망쳤는데, 사람들이 "당신이 억울하지 않으신가요? 화가 아니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20년간 사랑하는 분과 함께했고, 두 아들을 낳았으며,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부름이었던 노래를 선물해준 분이신데, 왜 그 분을 믿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오히려 그 분이 너무나 불쌍하고, 마음이 아프실 겁니다. 그 분과 헤어져서 본가에 돌아가지 않고 13년 동안 외롭게 혼자 살다가,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떠나셨습니다. 그때 누군가 곁에 있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요. 저는 그 분이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고현미와 이봉조의 인연은 참으로 기묘한 인연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21살의 현미가 미8군 이문공연에서 무대 무용수로 나와 대타를 하다가, 가수의 길을 걷게 되면서부터입니다. 그리고 무대에서 훗날 남편이 될 이봉조를 만나게 되었는데, 만약 현미가 쇼단의 메인 가수였다면, 그녀를 만나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현미의 월급으로는 반도체를 살 수 없었던 신출력은 밴드 마스터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봉조가 그녀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오히려 이봉조를 무시하게 되었고, 이봉조 역시 자신을 무시하는 현미를 못마땅해했습니다. 당시 수호단의 단장 입장에서는 쇼에 간단히 마스터와 메인 가수 사이가 자칫 틀어질까 늘 노심초사할 정도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당시 쇼단장이 구상해 낸 것이 이봉조 현미 사이좋게 만들기 작전이었고, 이 작전 중 하나가 나이트클럽에 함께 가서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두 사람은 쇼단장의 작전으로 인해 나이트클럽에서 짝이 되어 춤을 추게 되었고, 당시엔 남녀가 춤을 출 때, 손바닥 사이에 손수건을 끼우는 것이 관습이었는데, 이봉조는 이러한 관습을 비웃듯 현미의 손을 잡았습니다. 맨손으로 덥석 잡았고, 또한 이때 이봉조는 춤은 얼마나 서툴던지 매번 현미의 발을 밝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렇게 못 나 보이던 이봉조가 이날 이후로 뭔가 솔직하고 어딘가 순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 점점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연애는 한때 단장이 걱정했던 것과 달리 쇼 단위 운영이 안 될 정도로 늘 붙어다녔고, 그래서 이번에는 단장이 오히려 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이봉조를 내쫓으려고 하자 두 사람은 미련 없이 함께 쇼다를 나오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이봉조와 1집을 작업하며, 1962년 미국의 대가수 냅킨콜의 곡에 현미가 직접 작사한 가사를 입힌 그 유명한 "밤안개"를 발표하며 단번에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이처럼 일과 사랑을 모두 이루며 인생에서 가장 꿈같은 시간들을 보내던 그녀는 이러한 행복이 마냥 영원할 것만 같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그러나 결국 연인이었던 이봉조와의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봉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결혼 날짜를 계속 연기하고, 어느 날 처음 보는 여자가 현미를 찾아와 진짜 부인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이에 가슴이 아프고, 혼란스러웠지만, 현미는 이미 임신 8개월이라 유산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봉조와 대화하고, 자신도 임신 8개월이 된 사실을 전했습니다. 이후 현미는 이혼 서류까지 보여주며 이봉조를 안심시켰고, 결국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현미는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 이봉조가 제출한 이윤 서류는 현미를 놓치기 싫어서 가짜로 만든 서류였습니다. 심지어, 이후 8년 동안 본처와 현미 집을 왔다갔다 하면서 두 집 살림을 했는데, 현미는 이러한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으로 전화한 통이 왔습니다. 다짜고짜 그녀에게 이봉조가 "지금 애가 넷인데, 현미씨는 이 사실을 알고 있나?"라는 충격적인 내용에 전화했습니다. 그래서 현미가 무슨 말인지 물어봤더니, "본초와 이혼할 당시 딸만 둘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 제 스타일에 맞게 직업적인 어조로 수정하면서, 다시 한번 청천경력 소식을 들었습니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알아봤더니, 이봉조는 75년도부터 현미와 살면서 본부인의 집에도 왔다갔다 하면서, 그 사람의 말대로 진짜 두 집 살림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본부인과의 사이에서는 두 명의 자녀를 더 입양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더 이상은 안된다고 판단한 그녀는 당신이 그렇게 나쁘면 헤어지자고 요구했다. 이에 이봉조는 술을 많이 마시며 "너랑 헤어지면 나 파산할거야. 다 같이 이 세상을 떠나자"고 말했다. 그런 다음 그는 집안의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이때 겁에 질린 현미는 잠옷 위에 밍크 코트를 걸치고 아이들을 배우 엄앵란의 집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이봉조는 그들을 그 자리까지 쫓아갈 정도로 기특했고, 결국 신성일과 몸싸움을 벌였다. 어쨌든 현미가 본국으로 돌아가 모든 관계를 청산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하자 이봉조는 안타까움과 민망함을 느끼며 결국 두 사람은 완전히 헤어지게 된다.

 

13년 후, 아들의 비자를 받기 위해 약 3개월 동안 미국에 머물던 현미에게 전남편 신우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그때 그가 말했다… 오빠가 당뇨로 입원해서 현재 병원에 계십니다. 전화를 받은 현미는 13년 만에 이봉조를 만났습니다. 이전에 만났을 때와는 달리, 이봉조는 수척한 상태였기 때문에 현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봉조는 오랫동안 홀애비로 살아왔고, 본초와도 진작에 헤어졌으며, 당뇨로 인해 많이 약해져서 틀니를 쓰고 있었습니다. 이봉조는 자신의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갑자기 틀니를 뺀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줬습니다. 그에게서 보인 처량한 모습을 본 현미는 땅을 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전 남편의 어려운 상황을 보고 안타까움이 솟아오르는 현미는 급히 아들에게 연락을 하며, "내일 미국으로 와. 아버지를 데리고 돌아가야 해." 라고 말했습니다. 나겠다고 했고, 이봉조 역시 현미 곁에 있기를 원해서 두 사람은 함께 미국으로 가기로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며칠도 안 돼서 신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신호가 말하길 "연관 어미야, 봉조 심장마비로 하늘 같다"고 합니다. 그 순간 현실이 눈앞에 벌어지지 않아 TV를 틀어보니, 뉴스에서는 이봉조의 비보가 나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현미는 남편 이봉조가 세상을 떠난 것을 자신이 곁에서 지켜주지 못한 것이 죄책감으로 덮여 괴로웠습니다. 또한, 이때 이봉조의 나이가 겨우 56세였는데, 그 젊은 나이에 아무도 없는 데서 혼자 눈을 감았다는 것이 너무 불쌍하고 마음이 아파서 한동안은 너무나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이봉조가 세상을 떠나고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어느 날, 현미에게 또 다시 한 통에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에는 이봉조의 본처에서 온 전화로, 본처가 세상을 떠나서 부부 합장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하고 싶냐는 전화를 받았고, 현미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원수는 어디로 가느냐"고 말했다.

 

20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지만 그 여자가 숨어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서 같은 경험을 한 여성으로서 안타까움과 안타까움을 표하고 흔쾌히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던 날 아들이 사는 미국에 묻혀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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