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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트롯2 진성 병이 악화되고 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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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속보 2023. 6. 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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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 씨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세 살 때 홍역 접종을 받지 않았으며, 어머니가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홍역이 유행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죽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도 그를 제대로 돌봐주지 않아 홍역 백신을 맞지 못했습니다. 3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스스로 홍역 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 어머니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고부간의 갈등으로 할머니가 어려움을 겪으셨고,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셨습니다. 어머니가 가출을 하자 아버지는 그녀를 찾아 나서버렸습니다. 결국 친할머니가 어린아이를 키우게 되었지만 4살 때 할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셨습니다. 병석에 눕게 된 할머니는 2~3년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진성 씨는 어린 나이에 친척 집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1960년대는 대부분의 국민이 가난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자기 식구 건사하기도 힘든 때였습니다. 남의 식구인 어린 진성은 더욱 굶주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에 겨우 고구마 하나를 먹을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없는 것도 서러운데 배고픈 설움마저 견뎌야 했던 어린 진성에게 가장 큰 위안은 노래였습니다. 라디오 시절이었기 때문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애달픈 노래의 가사가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노래에 빠져들었습니다. 노래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라디오에서 노래를 들으면 다음날 바로 따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어깨너머로 창을 하는 것도 배운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가 창을 하는 것을 보면 수준급 배가 고파 산으로 들러 다니며 진달래 등을 따먹으며 허기를 달랬고 외로운 마음에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때 부른 노래는 이미자 씨의 "동백아가씨"나 "기러기 아빠" 등 어린아이의 노래였습니다.


논밭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은 구슬픈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서러운 노래를 부르는지 궁금해하며 짠해합니다. 때때로 밥이나 동전을 주기도 했습니다. 어린 진성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보릿고개라는 노래 가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노래는 그에게 유일한 위로이자 삶에 희망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진성은 가수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부모님이 없어서 학교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를 만나 가족이 다시 함께 살기 시작했고, 진성은 12살에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다시 합친 부모님은 심하게 싸웠고, 결국 외삼촌이 어머니를 데리러 왔습니다. 

 

어린 진성은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며 외삼촌과 어머니를 쫓아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왔습니다. 하지만, 외삼촌은 진성의 가슴을 군악발로 차고 그만 두었습니다. 이후, 진성은 부모님을 다시 찾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진성은 어머니와 1년 동안 함께 살았지만,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고아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유랑극단을 따라 떠돌아다녔기 때문입니다. 그 후 중학교에 다니면서도 홀로 가지 못하고 교복을 입은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배회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6학년 담임 선생님을 만나, 서울에서 기술을 배우라는 조언과 얼마간의 차비와 숙식비를 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14살에 홀로 서울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먹고살기 위해 중국집 배달부터 시작해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가수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았으며, 15살과 16살 때 유랑극단에서 일하면서 17살과 18살에는 야간 업소에서 가수 일을 시작했습니다. 노래 뿐 아니라 다른 일도 함께 했습니다.


땜빵 가수였던 제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부모님을 다시 찾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유명한 가수가 되어서 부모님이 찾아올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자신의 신분이 돈으로만 측정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또한 그를 위한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지은 가사를 노래한 노래가 인기를 얻으면서 그는 가수로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20대가 되면서는 밤무대와 노가다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야간 업소에서 일한 뒤에는 마음이 공허해졌고, 집으로 가도 반겨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마시러 나가서 마실 동안 노래하고, 그대로 취해서 자고 일어나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밤무대에서 노래하는 동안 낮에는 건축사무소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밤에는 노래하고, 아침에는 별을 보면서 일어나고 들어왔습니다. 그가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도중, 어느 작사가에게 만나서 메들리 가수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메들리 가수로 활동하면서도 백집 이상을 만들었고, 메들리 업계에서 인정받는 가수로 자리 잡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적인 인기는 얻지 못했습니다. 그는 남의 곡을 부르는 메들리 가수에서 자신의 곡을 부르는 가수가 되고 싶어 했지만, 당시에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은 가사로 노래를 부르게 되면서, 역주행으로 인기를 얻게 됩니다.

30대가 되어도 그는 밤무대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유혹이 적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업소에서 노래를 하다가 아줌마들이 그를 보고 인터폰으로 불러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런 불안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웨이터들이 우리를 이용해서 술을 팔았는데, 인사 한번만 드리면 양주 15만원짜리 하나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자기가 삼류가 되는 것 같아서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노래를 팔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그의 인생에 서서히 서광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 노래를 직접 작사하고 작곡했습니다. 아버지 무덤에 갔다가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합니다. 막걸리 한잔 올리고 자기도 술 한잔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 환청이 들렸어요. "너는 그 계통에서 그렇게 오래된 녀석이 왜 아직도 헤매고 있냐? 

 

누가 너에게 태클을 거는 사람이 있으면 아비가 다 막아줄 테니 마음껏 한번 날아봐라." 그 말을 듣고 불과 5분 만에 가서와 멜로디가 동시에 나왔다고 합니다. 태클을 걸지 마는 사실은 자기의 비참한 삶에 대한 절규였다고 해요.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인생의 탱크를 걸지 마세요. 아직도 전국적으로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아니었어요. 

 

그 후 2012년 안동역에서라는 노래가 뜨면서 대한민국 곳곳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활동 기간이 1년 반 정도 되었을 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젊은 시절에 술로 외로움을 달래는 나날을 보내서 그런지 그는 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병 두 개가 한꺼번에 옵니다. 

 

암뿐만 아니라 심장판막증까지 사실 심장판막증만 해도 대단히 위험한 병인데 림프종 혈액암까지 걸린 것이었습니다. 10대의 가수 생활이 시작해 40년 만에 무명을 벗고 이제 겨우 성공가도를 달리려는 순간 너무나 가혹한 시련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때가 2016년 12월 29일로…


2017년에 심장판막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는 것도 버거웠다는 이유로 노래 활동을 중단하지 않고 버텨왔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가슴이 답답할 때는 길거리에 앉아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음 스케줄로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심장이 좋지 않아 암 치료를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심장에 무리가 가서 쇼크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달간 심장을 다스린 뒤에 항암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전신 마취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제 심장 상태가 좋지 않아 부분 마취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때 정신이 말짱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수술 후에는 골수 채취도 마취 없이 받았는데, 이것이 죽음보다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항암 치료 6차까지 마쳤습니다. 이렇게 6개월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근육이 많이 쇠약해 걷지 못할 정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듣고 진성 씨도 혈액암 투병 중이라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알려지면서 신문 기사가 나왔습니다. 놀랍게도 …


퇴원하자마자 즉시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2017년 5월 아침마당에서 잊혀지는 것이 가장 두려웠던 그는 몸을 추스리는 새도 없이 다시 방송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중환자실을 전전할 정도로 9개월 28일이 지난 때 KBS 아침마당에서 연락이 왔어요. 걸음도 못 걷는 상태에서 그냥 무조건 오케이 했어요. 

 

왜 30년 40년간 무명생활을 하다가 이제야 여러분들이 좀 알려졌는데 잊혀져 가는 게 또 너무 두려운 거야. 그렇게 다시 일어난 그는 보릿고 개 운전 인생 회 시켰는데요. 이 노래들은 모두 진성 씨가 직접 작사했습니다. 가사들이 정말 가슴 절절하게 와닿고 옛 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데요. 모두 자신의 인생 경험을 담아 써서 그렇다고 하죠. 남성이고 사는 게 이렇게 좋은 건가요?

그는 이제는 노래 뿐만 아니라 오디션 예능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가 이렇게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아내 덕분입니다. 아내가 없었으면 모두 없을 뻔한 영광이었어요. 투병 중 너무 힘들어 포기할까 했는데, 아내가 있어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불행했던 과거와 무명 가수인 처지 때문에 원래는 결혼을 꿈꿀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쉬운이 다 되어 만날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동역에서 덜컥 암에 걸린 것이죠. 결혼하자마자 아내를 힘들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그녀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진 계기가 있었습니다. 

 

진성 씨가 퇴원한 후, 아내는 남편 몸에 좋다고 하는 약초를 캐기 위해 심마니 같은 사람들을 따라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항암에 좋다는 야생 백도라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채취하기 위해 4m 정도 되는 암석 위에 있는 백도라지를 캐려다가 발을 헛디뎌 두 바퀴 굴렀다고 합니다. 

 

여기저기 꿰고 타박상을 입은 아내를 보고 마음이 미어졌어요. 다친 아내를 끌어안고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 때 "이런 여자라면 내 모든 걸 바쳐 지켜 주리라" 결심했다고 해요. 평생 한 번도 제대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그에게 어머니와 같은 희생과 헌신의 사랑을 보여준 아내를 드디어 알아차린 것이죠. 그는 이제 아내만을 바라보는 남자가 되었습니다.

한편 그의 어머니와는 결국 다시 만났는데요. 아직도 조금 어색하지만 자신을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자식된 도리를 다 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어릴 때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자식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매우 애석하네요. 자신의 불행했던 유전자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것이 정말 가슴 아픕니다. 아직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신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최근 오은영씨는 금쪽 상담소에서 나와 만성적인 우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5년 박사가 진단을 내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슬픈 현실 속에서도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시는 진성씨는 아들딸은 없지만 대신 후배들을 자식처럼 생각하며 보이지 않게 많이 도와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육체적인 건강 상태 또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이 알려져 걱정스럽습니다. 암이라는 질병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이로 인해 녹화가 긴 방송에 대해서는 상당한 부담을 느끼신다고 하셨습니다. 미스터트롯 2 같은 방송은 녹화 시간이 상당히 길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건강 상태가 더욱 걱정스럽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암보다 지금 당장 더 힘든 것은 심장 기능인 것 같습니다.

 

진성씨가 2021년 불후의 명곡에서 직접 밝힌 내용인데, 암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심장 기능이 아직도 37%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걱정스러운 상황입니다. 앞으로는 가요계 생활을 얼마나 할지 모르겠지만, 명곡 다운 명곡을 남기고 싶다는 각오를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의 아내도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진성씨는 자신의 믿음과 노래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계시는 모습이 정말 멋집니다. 저희도 그의 건강 상태가 어려운 것을 잘 몰랐는데, 이제는 더욱 건강관리에 신경 쓰시면서 노래와 봉사활동을 계속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노래를 오래오래 불러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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