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자는 1970년 TV 시공채 10기 탤런트로 데뷔했습니다. 그녀는 당시 육감적인 몸매와 큰 키로 인기를 얻으며, 남성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이효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당대 최고의 비키니 여신으로 불렸고, 망고 음료 CF의 원조도 바로 그녀였습니다.
또한, 김영자는 다양한 영화에서 탄탄한 연기력으로 제20회 26회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밝은 모습 뒤에는 감춰진 인간 김영자의 삶은 행복보다는 깊은 슬픔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겪으며, 세상을 떠난 두 명의 아이는 여전히 그녀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겨놓았습니다. 아버지와 남편의 혼의 자식까지 버리게 되면서, 그녀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버린 아픈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1938년, 군수 딸이신 김형자의 어머니와 부잣집 아들이셨던 김영자의 아버지가, 당시 흔치 않았던 연애 결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께서 김영자를 임신했을 때, 6.25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대전으로 피난을 가야 했고, 어느 한 집에 숨어 있을 때, 갑자기 김영자가 뱃속에서 나오려고 하면서 하늘에 전쟁으로 인한 폭격기가 날아다녔기 때문에 집안을 다쳐 놓았습니다. 이렇게 까만천으로 둘러싸인 채 그녀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한편, 그녀의 어머니는 이미 딸만 3명을 낳은 상태라 내심 아들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넷째마저 또 딸이 나와서 "또 딸이야 어휴"라고 한숨을 지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은 비록 또 따르지만, 아들 노릇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형자 돌림에 아들 자를 써서 김영자라 지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녀가 일곱 살 때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신다며 서울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사업을 하신 아버지가 가족들과 연락이 끊겨버렸습니다. 그래서 김영자의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를 찾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뒤, 한 다방에서 낯선 여자로부터 현재 그녀의 아버지가 어디서 누구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김영자의 손을 잡고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따라간 7살의 김영자는 낯선 집 앞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이 집에 문을 열자 한 여자가 아기를 낳은지 얼마 안 됐는지 몸조리를 하며 누워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외도로 낳은 자식으로 말 그대로 혼에 자였습니다.
어머니가 이 광경을 보자마자 신고했던 고무신으로 그 여인을 마구 혼냈습니다. 결국, 이날 이후로는 아버지를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버지 없이 어머니가 홀로 5달을 키워야 했고, 당시 여성이 혼자서 5명의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가장으로서의 부담으로 힘들어하던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그녀에게 고민을 덜어주고 도움이 되기 위해 김영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배우가 될 결심을 했습니다. 첫 데뷔 때, 그녀는 서구적인 외모로 남성들의 눈길을 끌었으며, 남자들이 줄을 서서 그녀를 쫓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바쁘다는 이유로 만남을 거절하고, 나중에 다방에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1년 정도 후 TBC 방송국에서 그를 다시 만났지만, 그날은 그녀를 이끌고 아무데나 가서 술을 마시고 싶다며 끊임없이 권했던 그 남자는 이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쨌든, 1970년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녀는 청순한 외모와 큰 키, 그리고 육감적인 몸매로 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큰 사랑을 받았고,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그녀의 연기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여자 정말 대단해! 전국적으로 연기를 잘 하면서 예능에도 소질이 있다니, 방송사들이 그녀한테 별것 다 시키기도 했대. 그리고 그녀가 이 시절에 결혼까지 약속했던 첫사랑이 있었는데, 그 남자의 어머니가 우리 집안에 딴따라는 절대 안 된다며 극심한 반대를 했대.
그래서 결국 그녀는 너무 속상해서 그 남자와 이별하고, 홧김에 첫 번째 남편과 결혼을 했대. 근데 30년 후에 첫사랑 남자를 우연히 만나봤는데, 30년이 지났는데도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김영자 그녀는 굉장히 좋았대. 그런데 교통사고로 다친 그녀가 집에서 누워 있는데, 갑자기 첫사랑 남자가 생각나서 연락을 해봤더니, 전화기가 너무 해서 들려오는 낯선 여자 목소리에 그냥 화를 내버리고 말았대. 그리고 며칠 후에 우연히 그 남자 소식을 듣게 됐대.
제가 읽어보니, 예전에 너무나도 사랑했던 분이 갑자기 떠나셨다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리고 훗날 첫사랑과 이별 후, 홧김에 영화배우 김경수와 결혼하셨지만 8년 후에 헤어지게 되셨다는 이야기군요. 그 8년간의 결혼 생활이 그녀분께서는 불행 그 자체였다고 하셨다는데, 정말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 불행의 이유는 첫 번째 남편과의 임신으로 인해 아이를 두 번이나 잃으셨고, 첫 번째 남편의 문란한 외도도 큰 상처를 남겼다는 이야기네요. 그녀분께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꼭 마음을 다스리시면서 힘내시길 바래요.
결정적으로 그녀는 8년 전에 이혼을 진행했어야 했지만, 이혼 후 여자 연예인은 방송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녀는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참았습니다. 결국 남편은 그녀와 상의 없이 자신의 유산을 자신의 가족에게 준 것으로 알려졌고, 그녀는 8년 동안 참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첫 번째 남편과 이혼을 결정합니다. 이혼을 결정할 때, 그녀는 남성에 대한 모든 기대를 포기하고 혼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을 다짐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외로움과 새로운 삶을 꿈꾸는 욕망에 쉽게 영향을 받아 또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은 첫 번째 남편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고, 경제적인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여 결국 그녀와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두 번째 이혼을 할 때는 남편이 빚을 모두 갚아주고 집과 살림살이도 마련해주어 혼자 살 수 있게끔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남편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지 한 달 만에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고 그 집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외도와 더불어 자신마저 두 번의 사랑에 실패하며, 솔직히 남자라면 이제 징글징글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누군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되살아날 것 같아서, 이제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 무서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영자는 자신의 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집이나 근심 걱정이 한 가지씩은 있더라도, 우선 무엇보다 가족들이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감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온 집안이 우울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이 많은 집은 항상 건강이 안 좋은 집들이 많은 것 같고, 반대로 돈이 없으면 그만큼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자식이 속상한 일이 없으면 부모도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집마다 뭔가 꼭 걸리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만 생각하면 되고, 나만 건강하면 되며, 나를 위해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 삶은 건강하고 경제적인 상황이 허락된다면 혼자서도 그저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 사람은 어떻게 혼자 살까? 너무 외롭지 않겠느냐?"라고 하지만, 나는 다른 것에 대해서는 걱정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믿음이 굵어집니다. 이제부터는 그저 행복한 나날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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