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는 60년 이상이 되는 세월 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국민 가수로, 특히 1960년대에는 발표하는 곡마다 대한민국 가요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인기와 인지도의 힘으로 현미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되어 대한민국 대표 가수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미의 인생은 그녀가 가수로서 명성을 얻은 모습과는 달리 극단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전에 믿고 결혼했던 남편이 두 집 살림도 모자라 혼외자식까지 나가며 그녀에게 흉기를 휘둘러 집안에 큰 피해를 입힌 일이 있었고, 그녀는 남편의 본처에서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야 했습니다.
오늘은 현미의 인생 이야기를 같이 들어보도록 해요. 현미는 1938년에 평안남도 당동군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어요. 13살 때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6남매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오게 됐는데, 그녀의 막내 동생 두 명은 아이가 어린 관계로 피난기를 따라가지 못해 북한 할머니와 함께 남아야 했어요.
그리고 그 이후로는 평생 북한에 남아야만 했대요.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될 때 현미는 중국 연변에서 어릴 적 헤어졌던 동생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요, 그녀의 동생들은 북한에서 살면서 머리도 다 빠진 채로 살았고, 그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서 현미는 아주 불쌍한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 만남 이후로 현미는 동생들을 계속 생각하면서 눈물만 흘리게 됐는데, 이런 감정 때문에 지독한 우울증에 걸렸대요. 그래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는 환경을 바꾸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그래서 미국으로 떠나게 된 것이죠.
달간 지내면서 겨우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다고 말했어.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6.25 전쟁이 끝난 뒤 21살의 현미는 그 어려운 시절 덕성여대 무용과정을 수료하고 미8군 위문 공연에서 무대 무용수를 했어. 그러다가 어느 날 방송을 하기로 했는데, 대타로 나선 다른 여가수가 펑크를 터트리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대신 불러달라고 하면서 가수의 길을 걸어갔어.
당시 여대생 가수라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인기를 얻어 금색 숏안에 메인 가수가 되었어. 그리고 그때 운명적인 남자도 만나게 됐는데, 그 사람은 바로 훗날 그녀의 남편이 될 이봉조였어. 한편, 이때 현미가 쇼던의 메인 가수였다면 이봉조는 현미 월급의 반도체 못 받는 그저 신출내기 밴드 마스터였어.
그래서 처음엔 현미 입장에서 이봉조가 당연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는 이봉조를 대놓고 무시했어. 그러자 이봉조 역시 나름 콧대가 있었는지 자신을 무시하는 현미를 몹시 못마땅해했는데, 당시 쇼다는 단장의 입장에서는 쇼에 간판인 마스터와 메인 가수 사이가 자칫 틀어질까봐 걱정됐단 말이야.
이 작전은 쇼단장이 큰일 날까 봐 항상 노심초사하며, 쇼를 망치지 않을까 걱정하던 때에, 이봉조와 현미 사이를 사이좋게 만들기 위해 부상을 당한 거실을 수리하는 작전이었습니다. 이 작전 중 하나는 나이트클럽에 함께 데려가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었고, 그랬던 결과 두 사람은 작전으로 인해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이봉조는 당시 춤이 서툴더라도 매번 현미의 발을 밟기 일쑤였지만, 이날 이후로 뭔가 솔직하고 어딘가 순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점점 좋은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의 연애는 한때 쇼단의 운영이 제대로 안 될 정도로 늘 붙어 다녔고, 이번에는 단장에게 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이봉조를 내쫓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두 사람은 미련 없이 함께 달려갔습니다.
함께 쇼단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이봉조와 함께 1집을 작업하며 1962년 미국의 가수 냅킨콜의 고개 현미가 직접 작사한 가사를 입힌 그 유명한 "밤안개"를 발표하며 단번에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과 사랑을 모두 이루며 인생에서 가장 꿈 같은 시간들을 보내던 그녀는 이러한 행복이 마냥 영원할 것만 같았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이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당시 이봉조의 아이를 임신하고 결혼 날짜까지 잡았는데, 이상하게도 이봉조는 알 수 없는 이유들로 결혼식 날짜를 계속 미루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 보는 여자가 현미를 찾아와 "한국의 이봉조 씨의 부인이고, 딸도 두 명이나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현미 역시 임신 8개월 차로 유산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일단은 모르겠다며 이봉조 씨와 얘기하라고 하고 그 자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봉조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따지자, 이봉조는…
현미가 이혼서류를 보여주면서 이혼을 결정한 후, 그녀는 남편의 말을 믿고 일단 살림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봉조가 보여준 이혼서류는 가짜였고, 이후 8년 동안 이봉조는 본처와 현미의 집을 왔다갔다 하며 두 집 살림을 했습니다. 현미는 이러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집으로 전화가 왔는데 이봉조가 지금 애가 넷인데 현미씨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봉조는 본인이 현미의 팬이라고 하며 현미가 속고 있는게 안쓰럽다며 현미에 대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알아보니 이봉조는 75년도부터 현미와 살면서 본처인의 집에도 왔다갔다 하며 두 집 살림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현미는 충격받았습니다.
자녀를 더 출산하는 것은 막장 그 자체였습니다. 결국, 더 이상은 안되겠다고 판단한 그녀가 당신 참 나쁘다며 이별을 요구하자, 이봉조는 흉기를 들고 와 나는 너와 헤어지면 못 살겠다. 너나 나나 다 같이 이 세상을 떠나자며 집안에 온 살림들을 부셔버리게 됩니다.
당시 현미는 그 추운 겨울날 잠옷바람에 밍크코트 하나 걸치고 두 아들을 데리고 엄앵란 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봉조가 그곳까지 쫓아와서 물리적 다툼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아무튼 이후, 현미는 모든 관계를 정리하고 본처에게 돌아갈 것을 요구하자, 이봉조도 미안하고 창피했는지 결국 현미를 놓아주게 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헤어진 후,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현미가 아들의 영주권을 받으러 미국에 3개월 정도 있을 때, 어느 하루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그것은 전 남편의 전화였고, 지금 오빠가 당뇨로 아파서 병원에 간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입원 중인데, "와줄 수 없냐?"는 전화가 왔습니다. 이 연락을 계기로 13년 만에 이봉조를 다시 만난 현미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에 당당했던 이봉조는 어디에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당뇨로 인해 아랍 볼 수 없을 정도로 수축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를 알아보니, 본처와는 진작에 헤어졌고 홀애비로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매일 술만 마시다보니 몸이 성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고, 그때 이봉조는 이빨까지 다 빠져서 틀니를 하고 있었습니다. 현미에게 자신의 불쌍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틀니를 뺀 모습을 보여주자 현미는 "왜 당신이 이렇게 됐냐? 어떤 이봉이란 존재라며" 땅을 치며 울었습니다.
결국 전남편에게 이러한 모습을 보여준 후, 안타까운 마음에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연락해 "나와라. 아버지 다시 모셔야 될 것 같아. 저대로 두었다가는 정말 큰일 나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봉조 역시 현미 곁에 있기를 원해서, 두 사람은 함께 미국에 가서 살기로 약속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약속을 한 지 며칠도 안 돼서…
신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신호가 말하길, 연꽃 애미 이봉조가 심장마비로 하늘로 갔다고 했으며, 그 순간 실감이 나지 않아 TV를 틀어보니 정말 뉴스에는 이봉조의 비보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현미 그녀는 이봉조가 세상을 떠난 것이 자신이 곁에서 지켜주지 못해서 그런 거 같아 큰 죄책감이 들어 너무 괴로웠고, 또한 이때 이봉조의 나이가 56세였는데 그 젊은 나이에 아무것도 없는 데서 혼자 눈을 감았다는 게 너무 불쌍하고 마음이 아파서 한동안은 너무나도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이봉조가 세상을 떠나고 세월이 한창 흐른 후, 어느 날 현미에게 또 다시 한 통에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에는 이봉조의 본처에서 온 전화로, 본처가 세상을 떠나서 부부 합장을 할까 싶은데 해도 괜찮냐는 전화였습니다. 원래 이봉조의 형 즉 시아주머니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가 봉조가 결국 본처와 이혼했고,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전 본처와 절대 합장을 하지 말라고 유언을 했다며 반대를 했는데, 그런 시아주머니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 현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이거였어. 그러자 그녀가 말했어. "사람이 죽으면 원수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정말로 20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지만, 그 여자는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그래서 같은 여자로서 참 안쓰러우면서도 결국 합의를 했어. 그리고 자신이 죽은 후, 아들이 사는 미국에 묻혀달라고 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미가 고백했어.
"내가 이봉조 씨와 함께 살 때, 그 어떤 것 하나도 내 이름으로 된 게 없었고, 모든 것이 남편 명의로 돼 있었어. 그런데 맨발로 아이들 손을 잡고 도망 나왔는데, 그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냐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말했어. '사랑하는 사람과 20년을 살았고 두 아들을 낳았고, 평생보를 노래를 선물해준 사람이 왜 믿겠냐?
오히려 그 사람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 나와 헤어지고 본처에게 돌아가지 않고 13년을 외롭게 혼자 살았는데, 아무도 없는 데서 혼자 눈을 감은 거야. 그때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살 수 있었을 텐데, 그저 불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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