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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노트 유미리 안타까운 근황!파란만장한 인생!우울증과 사기로 2번?억대 빚?첫사랑 결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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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속보 2022. 8. 22.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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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강변가요제에서 활약했던 유미리는 돌연 자취를 감추고 은둔생활을 했다고. 유미리가 나이 57세에 어렵게 살고 있는 근황을 전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젊음의 노트 유미리 안타까운 근황, 어떻기에?'

젊음의 노트' 유미리가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개인 파산 신청을 고려 중인 근황을 전했답니다. 유미리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식당에 붙어 있는 구인공고를 확인했답니다. 가수가 아닌 다른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는 것이랍니다.

 

현재 그녀는 먹고살기 위해 당장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80년대 스타 유미리가 어째서 가수 활동을 하지 않고 생계를 걱정해야 할 위기에 놓였을까요.

 

현재 유미리는 두 마리의 유기견과 함께 혼자 생활하고 있답니다. 그에게는 그동안 여러 번의 시련이 있었답니다. '젊음의 노트'로 강변가요제 대상과 10대 가수상, 신인상 등을 휩쓴 그이지만 당시 수입은 모두 매니저에게 돌아갔다답니다. 그는 "그 당시에는 매니저분이 다 관리를 했던 상황이다"며 "노래하면서 제가 돈을 받아야 된다는 건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누가 말을 안 해주니까"라고 말했답니다.

 

매니저의 착취로 소속사를 나와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가수의 꿈을 다시 이루기 위해 한국에 돌아와 영어 강사, 라이브 카페 운영 등으로 새 앨범을 제작하기 위한 돈을 모았답니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새 음반을 발표하려 했지만 사기를 당하면서 빚더미에 오른 그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우울증으로 14년째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첫사랑 남자친구와 결별한 후유증으로 우울증,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는 그가 약물치료를 받으며 병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미리는 "제가 그때 16층에 살았던 상황이다. 제가 걸어가더라, 베란다에. 아무 생각 없이 베란다에 걸어갔던 것 같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답닏.

 

한편 유미리는 슬하에 자녀는 없으며, 결혼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남편 역시 없다.

 

지난 86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젊음의 노트’로 대상을 차지한 가수 유미리(42).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적어야 하나~’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당시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미국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해외파 가수의 선두주자로 가요계에 발을 내디뎠던 그가 15년 만에 디지털 싱글 음반 ‘NEW미리’를 들고 돌아왔다.

 

“사실은 그동안 노래를 계속해 왔어요. 공중파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별로 없어 미사리나 백운호수 근처 라이브 카페 무대에 자주 올랐죠. 아웃사이드에서 활동을 하면서도 새로운 앨범을 내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뒤늦게 그 꿈을 이뤘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 그곳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그는 데뷔 직후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된 그는 세상이 모두 자신의 것인 양 여겨졌고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의 영광의 날들은 안타까운 사연으로 보답받지 못하는 근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한 때 대한민국 응원가로도 쓰인적이 있는 [젊음의 노트]를 불러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그녀의 근황은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후 정규 1집, 2집 활동을 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팝뮤직을 배운 뒤 한국으로 돌아왔고 1992년 김범룡 작곡의 '하이하이하이'를 발표하고 활동을 했지만 학업을 위해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승승장구할 것만 같은 유미리의 앞에 첫 번째 시련이 다가왔는데 당시 매니저가 활동한 만큼의 수입을 모두 착취한 것이다.

 

매니저의 착취로 소속사를 나와 미국으로 돌아간 유미리는 가수의 꿈을 다시 이루기 위해 한국에 돌아와 영어 강사, 라이브 카페 운영 등으로 새 앨범을 제작하기 위한 돈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불행하게도 사기를 당하게 되어 수중에 있던 돈을 모두 날리고 맙니다. 

이번 앨범은 그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한다.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극복하고 새 삶을 얻은 후 내놓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해 10월부터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면서 죽을 생각만 했다는 것.

 

“아무 이유 없이 죽고만 싶었어요.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살고 싶은 의욕도 전혀 없었어요. 혼자 사는 아파트 16층 베란다에 서서 뛰어내리려고 맘먹은 것도 여러 번이었죠. 도로에 차가 쌩쌩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과속하는 차에 뛰어들면 죽을 때 고통이 덜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숱하게 했어요. 마치 죽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미국에 있는 가족들은 그의 상태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부모가 걱정할까봐 차마 말하지 못했기 때문. 이유 없이 자살충동에 시달리던 그는 병원 치료 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달쯤 폐인처럼 지내다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기 직전 대학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어요. ‘지금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견딜 수 없으니 제발 나 좀 살려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상담원이 예약이 꽉 차 있어 일주일 후에나 진료가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저로서는 한시가 급한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무작정 집밖으로 뛰쳐나가 택시를 타고는 가까운 정신과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했죠.”

그를 상담한 의사는 “우울증이 중증을 넘어선 상태”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는 스스로 우울증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나 3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저도 모르는 새 제 정신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더군요.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였거든요. 제가 강변가요제 이후 한국에서 활동할 때 미국에 있던 그 친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1년 여 동안 편지를 보냈어요. 저도 날마다 전화를 걸었고요.”

남자친구는 그가 가수로 활동하는 걸 반대하지 않았지만 결혼 후에는 미국에서 살 것을 원했다. 하지만 한창 인기 가도를 달리던 그는 남자 친구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한국에서 유명세를 얻게 되자 그 친구가 ‘결혼해서 미국에서 살래, 아니면 한국에서 계속 노래할래?’라고 묻더라고요.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노래를 선택하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헤어지자고 하더군요. 자신은 한국에 들어와 살 수 없다면서.”

 

결국 두 사람은 안타까운 이별을 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데 만족하며 아픈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남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하는데, 저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지금도 그 친구가 제 꿈에 자주 나타나요. 20여 년 전의 일인데도 말이죠. 꿈속에서 그를 만나고 나면 마음이 허전하고 아파요. 헤어질 당시에는 몰랐는데 어느 순간 몹시 후회가 되더라고요. ‘차라리 노래 대신 그와 결혼해 알콩달콩 자식 낳고 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요. 얼마 전 그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산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젠 가정이 있는 친구니 저와 인연은 아닌 듯한데 그래도 꼭 한번 만나보고는 싶어요.”

 

첫사랑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그는 이제는 “80% 정도 나은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수입이 전무한 탓에 식당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유미리는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변호사를 찾아 파산 상담까지 받으며 끝내 눈물을 흘려 안타까움을 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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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에게도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80년대 최고의 가수였던 '김범룡'입니다. 유미리는 김범룡이 늘 고마운 존재라고 합니다. 가요계에서는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하면서 오빠라고 부르는 김범룡에게 미국에서와 낯설었을 자신에게 이것저것 잘 챙겨주어 매우 고맙다고 말하며 30년이 넘는 우정을 과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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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최근 김범룡이 유미리를 위해 준비한 깜짝 선물이 있다고 합니다. 유미리 위해 여러 개의 곡을 작곡해 놓았다는 것. 유미리는 작곡한 곡들을 들어보고는 리듬까지 타며 매우 만족해 하였습니다. 이어 김범룡은 "한 번 풀리면 술술 풀려",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만 가면 돼"라고 말하면서 유미리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최근 그녀가 팬미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85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장수'가 운영하는 라이브카페에서 입니다. 김장수는 "미리는 제가 한창 활동할 시기에 시작했던 막내예요", "미리가 강변가요제, 저는 대학가요제, 그래서 둘이 친하죠"라고 말하며 친분을 드러냈습니다. 

김장수의 라이브카페에는 유미리와 30년을 함께 해온 팬클럽분들이 모였습니다. 이어 유미리는 가수는 팬들이 있어야 힘을 낸다면서 항상 힘을 주고 응원해주는 팬들 때문에 자신이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유미리는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오랜만에 무대에 올라 [젊음의 노트]를 열창하였습니다. 30년의 세월에도 그녀의 노래 실력과 퍼포먼스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노래에 모든 것을 쏟았지만 보답받지 못한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유미리의 재기를 응원하는 선배와 응원하는 팬들이 있기에 그녀는 이제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김범룡이 만든 곡을 유미리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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