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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진, 미스터트롯2 1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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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속보 2023. 6. 3.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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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튜버가 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박서진 씨가 미스터트롯2에 참가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박서진 씨는 장군신이라는 타이틀이 없으면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아보지 못해 괴로워하며, 소속사도 몰라주는 상황에서 미스터트롯 2 지원을 결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직 어리지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한 박서진 씨의 이야기와 최근 인터뷰를 통해, 미스터트롯 2에 참가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박서진 씨의 본명은 박효빈 씨이며, 1995년에 경상남도 사천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배를 타며 일을 하다가, 어렵게 트로트 가수로 성공했습니다.

 


혼자 다니기 힘들어 배를 타고 다녔는데 배에서는 항상 트로트가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또한 그 지역에서는 트로트만 나와서 노래는 트로트만 있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트로트를 익혀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트로트 가수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놀러간 지역 축제에서 선물을 주겠다는 말에 혹해서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부른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장윤정 씨의 짠짜라를 불렀는데,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어떤 아저씨는 꼭 껴안아 주면서 정말 잘했다고 해주고, 어떤 아줌마는 울면서 "삼천포를 대표하는 가수가 되라"고 하며, 어떤 아저씨는 아이스크림 사 먹으라고 용돈 천원을 주기도 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이때부터 가수의 꿈을 꾸며 가수의 길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13살 때부터 그 이름만으로도 유명해져서, 이제는 커서 삼천포를 빛낸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노래자랑에 출전했던 적도 있습니다. 이때 입상은 못했는데, 초등학생이 부르기엔 너무 어려운 노래였습니다. 그만큼 그의 트로트에 대한 열정이 어린 시절부터 쌓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충청대에서 개최한 트로트 가요제 출전에서 은상을 받았는데, 그것을 본 스타킹 작가의 섭외를 받아 오디션을 보고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3살 때였죠. 2007년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의 리틀 장윤정으로 출전해 한 번 더 활동했고, 2011년에도 스타킹에 출연해 트로트 가수로서의 자질과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인정받은 트로트 가수인 장윤정 씨를 스타킹 방송에서 만났습니다. 아픈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그녀가 나중에 거액의 치료비를 보내줘서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엄마 치료비를 도와줄 방법이 있는지 물어봤던 그는 그 다음날 바로 입금해 줬다고 합니다. 당시 그는 17살의 소년 어부가 되어 아버지를 도와 배를 타고 고기를 팔며 지내고 있었고, 어머니는 자궁경부암 3기 판정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스타킹 방송으로 인해 서서히 팬덤이 생기게 되었는데, 팬 운영진이 인간극장에 출연을 신청해서 같은 해에 인간극장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매우 가슴 아픈 가족사가 자세하게 공개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재혼한 부부였는데, 재혼하기 전에 아버지 쪽에 형 세 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듣고도 믿기 어려울 만한 일이 생겼습니다. 형 세 명 중 2명이 갑상선암과 만성 신부전증에 걸려 많이 아팠습니다. 형들을 치료하기 위해 배도 팔고 집도 팔았고, 그러다 보니 빚이 점점 불어났습니다. 아픈 형들은 2009년 49일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엄마가 하혈을 했는데 병원에 갔다가 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그 당시 엄마는 아빠와 함께 백리를 하며 생계를 꾸리셨는데, 암에 걸려 더는 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아빠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서 제가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트로트 가수를 꿈꾸며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그만두고 어부가 된 그의 효심과 힘든 가운데서도 서로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울렸습니다. 그와 그의 아버지는 밤에만 활동하는 야행성인 장어를 잡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해야만 했는데, 한창 잘할 나이에 밤에 잠을 자지 못하며 아버지 일을 도왔습니다. 

 

어머니 치료비뿐만 아니라 생활비조차 없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설상가상 아버지마저 당뇨병이 있어 무리한 조업으로 생명의 위협을 초래하는 저혈당이 오기도 하는 모습에 진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부모를 위한 그의 효심을 보면서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노래를 부르는 것도 사실은 가수로 성공해서 돈을 벌어 빚을 갚고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고 싶어서가 더 큰 이유였습니다. 

 

노래를 부를 일이 생겨 가끔 외출할 때는 몸에서 나는 비린내가 걱정되어 씻고 또 씻던 어린 소년이 그렇게 열심히 사는 모습은 정말 장하고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웠습니다. 내 자식이 날 위해서 과연 저렇게 해줄 수 있을까? 심지어 그는 생선을 안 먹을 정도로 받아들일 정도로 싫어했는데도 부모님을 위해 그렇게 백리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잠 못 자고 눈이 벌게 들어오면, 더 크고 더 멋진 것을 보면 "가기 싫어하지만 억지로 가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경남 울산 지역 방송인 JCN에서 진행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18살에 가수의 꿈을 이룬 그는 천만원의 우승상금을 받으며 "꿈이라는 싱글 앨범"을 내고 가요계에 데뷔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장어잡이를 나가면 보름씩 나가야 하기 때문에, 들어오는 행사보다는 백일이 먼저이며, 꿈과 멀어지는 아들을 본 어머니는 광대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나 때문에 꿈을 포기하면 내가 죽어서도 편히 눈감지 못한다." 아버지도 동의하여, 서울로 상경하기 위해 배에서 내려서 가수의 길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19살이었고, 일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찾아주는 것도 불러주는 것도 없었으며, 가는 곳은 무료 행사나 재능기부였습니다. 돈 한푼 벌 수가 없어서 결국 월세를 내지 못하게 되며,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돈을 주면 방송 출연을 도와준다는 나쁜 사람들의 꼬임에 빠져, 천만 원이 필요했는데 그때 가지고 있던 돈이 150만 원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전부를 다 주었지만, 사기당하게 됩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목숨 같은 돈을 찾기 위해 사무장에게 30만 원을 주고 고소했는데, 그 사무장마저 돈을 받고 잠적하여 사기에 당합니다. 잘 때마저 없어서 냉기 바닥에서 자고 옆 병원 건물에서 씻고 하면서 거의 노숙하다시피 생활했습니다. 그런 형편을 알게 된 어머니가 다시 내려오라고 해서 내려갔지만,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문득 생각난 수와진 선배님들의 백혈병 아동 돕기 모금 행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찾아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우연히 각설이들의 눈에 띄게 되었어요. 그래서 품바 팀에 합류해서 6개월 정도 함께 공연했습니다. 그들은 거의 장구를 치며 노래했는데, 그곳에서 자신도 노래를 부르며 장구를 배워서 박서진 씨는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이후 각설이 판을 벌이며 전국의 장터를 떠돌며 노래를 부르는 장돌뱅이 트로트 가수로 활동했어요. 설 무대에서는 아직 많이 나서지 않았지만, 도움을 주신 박상철 씨와 박구윤 씨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연락해서 무대 뒤에서 장구를 칠 수 있게 허락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알리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가수들은 각설이 무대에서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자신의 무대에서는 장구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는 몇몇 가수들이 장구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가수로서 격이 떨어진다고 하거나 얼굴도 못생기고 노래도 못하고 집도 가난하다며 가수를 하지 말라는 등 무시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박상철 박구윤 선배님들이 그를 지지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장구 명인에게 배움을 받아, 장구 실력이 더욱 일취월장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드디어 진정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각설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우습게 바라보았지만, 저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을 열심히 하며 최고의 트로트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7년 말, 저는 아침마당에 출연하여 우주를 1위로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장구 때문에 가창력 논란이 있었습니다. 장구 퍼포먼스로 인해 그의 목소리가 덮혔지만, 그래도 저는 심사 결과 1등을 차지하였습니다. 

 

특히 3승에 도전할 때 임영웅씨와 함께 하였는데, 이때는 장구와 함께 하니까 플러스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박서진씨만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관객들이 많았기 때문에 심사 방법을 바꾸어서 1절은 노래만, 2절은 장구도 가능하게 해서 해결하였습니다. 이후 2020년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 경연을 했는데, 이제는 장구 없이 노래만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경쟁을 벌이면서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라운드에서는 어메라는 곡으로 장구를 치지 않고 노래만 부르면서 일등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나 4라운드 2차 경연에서는 잉여 이상으로 인해 노래를 멈추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는 안타깝지만, 이렇게도 제 가창력은 검증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이전까지는 그런 경험이 없었는데, 그날 처음 겪은 일이었습니다. 노래를 끊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계속 불러야 했지만, 자기 자신을 자책하며 견딜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자진 하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경연 대회의 규칙과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서 자진 하차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무대에서 큰 실수를 했지만, 계속해서 진행하면 선배들과 프로그램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것 같아서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또한, "생각이 많았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댓글을 보게 되니까 또 이렇게 나가면 내가 욕먹겠지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무대 위에서 집중을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TV조선에서 미스터트롯을 동시에 진행하던 박서진 씨는, 아직 25살 밖에 되지 않는 순수한 청년이라는 점에서 악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것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미스터트롯에서는 대스타 한 명이 탄생했습니다.


임영웅씨와 박서진씨는 이미 아침마당에서 인연을 맺은 사이였으며, 심지어 같이 콜라보로 앨범을 내기도 했습니다. 임영웅씨는 미스터트롯에 나가기 전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는 신인이었고, 박서진씨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상태였는데요. 아침마당 출연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서로 협력하여 2018년 '트로트의 신'이라는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당시 사람들이 그에게 미스터트롯에 나가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는 "자기보다 더 그 무대가 간절한 사람들을 위해서 나가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2022년 미스 트롯 2에 출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복합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부터는 그가 직접 전한 현재 상황을 전달하겠습니다. 2021년 여성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먼저 부모님의 건강 상태를 묻자, 어머니는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아버지는 그 전과 달리 당뇨병 약을 잘 챙겨 드신다고 하는데, 아직도 배를 타고 계신다고 합니다. 

 

배를 그만 타고 건어물 가게 개업을 고려 중인 것 같습니다. 기자가 그의 인기에 대해 물었을 때, 미스터트롯 세븐 다음으로도 잊지 않겠냐는 대답을 했었는데요. 이 인터뷰 내용을 잘 생각해보면, 그가 왜 미스터트롯 2에 출전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서진 씨는 가수로서, 돈을 많이 벌어 부모님을 편안하게 모시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효심이 깊은 그는, 더욱 부모님을 편안하게 모시고 싶고, 더욱 큰 기쁨을 드리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자궁암 3기라 더욱 힘을 낸 것 같습니다.

 


또한, 아주 베테랑이 아니면 행사비가 오디션 참가자들에게 유리하게 책정된다는 현실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더욱 널리 알리고, 자신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도 도전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박서진 씨의 미스터트롯 2 출전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편, 박서진 씨는 가수로서 이미 많은 선행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팬들과의 일화를 말해달라고 하자, 호스피스 병동에서 지내는 어머님 팬이 계셨는데, 3개월 동안 웃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병문안을 갔더니, 그 분이 저를 보시곤 활짝 웃으셨다고 하네요.

 

일주일 뒤에 그분 장례식장에 가게 되었는데, 아드님이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어머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효심이 깊고 아직도 착하고 순수한 박서진 씨를 많이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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