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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수, 불타는 트롯맨, 경찰 고소까지? 10년 째 안 나온 이유는? 악마는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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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속보 2023. 5. 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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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 심으라는 연예인의 삶을 요약하려 했지만, 삶은 허무하고 부족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김준수 역시 나훈아와 조용필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이후 노예계약을 파괴한 후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어 배은망덕한 사람이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지상파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꿈꾸는 팬들은 경찰에 고소를 낼 정도로 그의 활동이 부족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는데, 1986년 이란성 쌍둥이 중 둘째로 태어난 김준수는 어린 시절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집이 작아서 어디에서 자야 할지 모를 정도였고, 화장실이 없어서 뒷마당에 대나무로 만든 화장실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는 어릴 적 추억으로 남아 있는 집은 샤워기나 욕조가 없어서 겨울에도 찬 물로 몸을 씻거나 공중 목욕탕을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집도 사라져 버렸고 어린 그는 엄마와 함께 여인숙이나 모텔 같은 곳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며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어느 날, 엄마는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아들을 외할머니 댁에 맡기고 일을 하러 떠났다.

 

그리고 그때 대문 닦는 소리가 들려 아들은 형과 함께 엄마를 찾아나섰다. 그는 어릴 적 힘든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그 시절을 견뎌내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렇게 불안정한 생활을 하다 보니 1년 동안 말을 못하는 실어증까지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님이 몇 년간 살아낼 수 있는 집을 마련해 줄 수 있게 되어서 그의 삶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보금자리를 마련한 때, 화장실이 없는 집이었지만 함께 뭉쳐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편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는 6살 때부터 교회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며 노래에 대한 열정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SM에서 주최한 오디션에서 1500명 이상의 경쟁자들 중 무려 1등을 차지하여 동방신기라는 그룹으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동방신기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사실 비교가 어렵긴 하지만 거의 조용필이나 나훈아의 전성기만큼이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2009년 그룹이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그는 돌연 팀을 탈퇴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그가 속한 그룹 동방신기가 존속 시작 기간이 13년으로 군 복무기간을 포함할 경우 15년 이상이었는데, 계약 기간이 끝나더라도 추가적인 연장을 강요당하다 보니까였습니다. 사실상 연예계를 은퇴할 때까지 아니 평생 계약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수익 배분 문제로, 이와 관련해서는 너무 복잡하여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면, 당시 계약금이 없었으며, 활동 기간 동안 수백억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음반 판매량에 따른 수익이 멤버 한 명당 0.4에서 1%에 불과하여 인기에 비해 터무니없는 정산이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그를 포함해 3명의 멤버가 법정 분쟁 끝에 팀을 탈퇴하고 말았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SM 입장에서 이들이 결심한 것을 알게 되자 김준수를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이 방송 활동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젊은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는 예능 프로나 가요 프로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고 그나마 대형 연예 기획사에 입김이 약한 보도국과 교향곡에서나 간간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팀을 나온지 6년 만에 최초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방송국은 2015년 교육방송인 EBS 채널의 스페이스 공감이었습니다. 당시 공정위는 거대 기획사인 SM이 이들의 방송 출연 및 연애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으며, 한 국회의원은 방송사가 이유 없이 연예인의 방송 출연을 막지 못하는 일명 JYJ 법까지 발휘하였습니다.

 

김준수는 이와 관련하여 "그때는 지금처럼 활동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세 멤버들의 의지로 팀을 떠난 것이 맞지만, 나가서 따로 꾸려서 과연 가수 활동을 계속할 수는 있을까 생각했다. 그때는 아직 어렵고 최정상이었으며, 이런 생각을 감히 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가수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처럼 나오지 않고 남아 있었을 것이다.

 

대충 계산해봐도 금액이 어마어마하여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계약이 만료될 조건은 30대 중반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활동을 마치게 되면 보기에는 빛 좋은 게살구처럼 좋아 보일지 몰라도, 내가 진짜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을 여기서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방송 활동을 못할 거라 예상하고, 가수는 못하지만 보컬 레슨이라도 하면 어떨까라는 마음으로 팀을 나오게 된 것입니다.

 

김준수는 동방신기를 탈퇴한 후 방송 활동이 전혀 없었던 시기가 소속사에 있을 때보다 더 길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무려 100배나 더 벌게 되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당시 방송 출연은 전혀 하지 못했지만,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뮤지컬을 하며 또한 일본을 중심으로 콘서트와 팬미팅을 열어 수익을 창출했었습니다.

 

100배의 수익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팀에서 탈퇴한 후 딱 1년 만에 이루어낸 걸 굳이 언급하며, 의무적으로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허영심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몇 억씩 하는 자동차들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특히 국내에 단 한 대뿐인 한정판을 사는 등 당시 자동차를 구입하는 데 41억원 이상을 사용했습니다. 이와 함께 그가 쓴 돈은 차뿐만 아니라, 2017년에는 48억원에 분양받은 집과 인테리어, 미국 전 대통령 트럼프와 아랍에미리트의 대부호 만수르가 애용하는 제품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여러 방송을 통해 공개되자 노예 계약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고, 일각에서는 배임 망덕한 사람이라며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가 팀에서 나온 이후에야 비로소 이룰 수 있었던 것일 뿐입니다. 김준수라는 가수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의 인기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연예인으로 결혼했지만 방송활동을 하지 못했고,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은 TV에 자주 나와서 김준수라는 인물에 대한 감정이 복잡해졌습니다.

 

이는 김준수의 건재함을 알리기 위해 비싼 물건을 살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돈은 사치와 허영심이 아닌, 김준수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김준수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슬프고 처절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김준수씨가 한정판을 선호한 이유는 일반 사람들이 보통 소유하는 물건과는 매우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반 사람들이 한정판 자동차를 사려면 매장에 전화를 걸어 "한국에 있는 그 차, 제가 사겠습니다"라고 말해도, 자동차 딜러는 "무슨 소리세요? 일단 매장으로 오세요"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만약 김준수씨가 전화를 걸어 "안녕하세요, 김준수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딜러는 "앗, 그러니까요.

 

좋습니다, 언제 오시나요?" 라고 반갑게 응대할 것입니다. 그래서 김준수씨는 중간 가정에서 값비싼 물건들을 소유하며 VIP 대우를 받으며 중요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는 자신의 가치를 계속해서 확인받기 위해 한정판에 집착했고, 이러한 물건들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자 했습니다.

 

 

이유 때문이죠. 어쨌든, 시간이 흘러 방송엔 종편 채널이 생기게 되었고, 물론 이때도 한 번이라도 음악 방송에 나와 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좋겠다는 꿈을 꾸며도 자유롭지 못한 처지였습니다. 그래도 SM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TV조선과 채널A 등에서 점차 모습을 드러내게 됐고, 종편에서만큼은 활발히 활동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한편 이런 속 깊은 이야기를 5년에 '금쪽 상담소'라는 프로그램에서 모두 고백했었는데, 당시 그는 그 많던 무력이 지금은 사라졌는데, 왜 사라졌을까라는 의문에 오은영의 대답으로는 수많은 고난과 성장을 겪으면서 그 흔들렸던 정체성의 길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뮤지컬 가수로서 탄탄하게 인정을 받은 후로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뮤지컬 배우가 된 후에는 그 흔들렸던 정체성이 안정이 되면서, 나 자신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비싼 물건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마지막으로, 김준수가 고백한 내용을 전달하며, 만약 데뷔 전으로 돌아간다면 연습생 김준수에게 조언을 할 수 있다면, "너무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싶습니다.

 

물론,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꼭 가수의 꿈을 이루어야 했던 목표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시기를 모두 겪은 뒤,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살아야 할 때와 되돌아볼 시기가 있으며, 각자의 전성기가 다르기 때문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답이 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또한, 힘들었던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운동력은 정말 팬들 덕분입니다. 약 10년 동안 방송에 나오지 못했음에도 뮤지컬 배우로서의 기회를 얻고 평가를 받은 것도 모두 팬과 관객들 덕분입니다. 그 덕에 지금의 소속사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 감사함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현재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관 중 하나로 여기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안정감과 편안함입니다. 예전에는 화려하고 특별한 것을 선호했지만, 이제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큰 걱정거리 없이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제보다 더욱 편안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욕심을 내려놓아 하루 더 편안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도전과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데뷔 후 21년 동안 긴장감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사람이 너무 착하다 보면, 안티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해 부모님의 욕설까지 올라오는 상황을 겪었습니다. 이에 김준수는 팬들이 내부에서 결의하여 변호사를 고용해 경찰서에 고소를 하며, 연예인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면서, 안티에 대한 대처를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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