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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숙, 피소돼 전 재산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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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속보 2023. 6. 1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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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숙씨와 함께한 MBC 일요일 아침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은 1986년부터 1993년까지 꽤 오랫동안 방영되었습니다. 순돌이 아버지와 순돌이 어머니로 출연한 임현식씨와의 티격태격은 북해를 넘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박원숙씨는 2000년대 들어 아들에 대한 팔불출 이미지가 극에 달해 타개 버린 듯한 못된 시어머니 역으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면에 특화된 배우로 칭송받았습니다. 

 

이런 연기를 너무 자랑스럽게 보다가 욕하다가도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 드라마에서 다방면 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했습니다. 또한, 젊은 시절에는 영화 '우양의 아파트' 그리고 이장우 감독의 교명한 영화 '어둠의 자식들' 등에 출연하여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감독은 박원숙씨가 젊은 시절 소피아 로렌과 학산 느낌이었다며 마음속으로 흠모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박원숙씨는 탁월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연기자입니다.

하지만, 과거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녀는 고통과 절망의 벼랑 끝에서 희망을 찾아 헤매는 한편의 드라마같은 인생 역정을 겪었습니다. 박원숙씨는 1949년 1월 19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어릴적부터 만화와 출판은 고래 쓰는 아버지로부터 풍부한 감수성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영화를 보면서 연기자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게 되었고, 이 가다 분했던 그녀는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첫 남편과 대학 1학년 때 사용 드라마 모임에서 ymca 타고 간 곳에서 처음 만나게 됐습니다. 당시 전 남편은 동국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었고, 이 동아리에서 연출을 공부하고 있었으며 나이는 박원숙씨보다 두 살 많았습니다. 연극에 열중하던 대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그 선배와 연극 소도구를 찾으러 청계천을 헤매다가 그만 통행금지 에 걸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여관방에서 관계를 맺게 되었고, 덜컥 임신하게 됐습니다. 

 

박원숙씨는 요즘은 사회분위기가 미혼모도 당당하게 살지만, 그 때는 처녀가 임신하면 얼굴에 들고 살수가 없었다 라며,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박원숙씨는 첫 남자였던 남편과 만난 지 두세 달 만에 혼전 임신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만난 지 7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됐습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21살이었습니다. 남편은 결혼 지구 군에 입대해서 독수공방 신세를 얻고, 삶의 유일한 희망인 연기자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임신 7개월 만삭 몸으로 1969년 MBC 2기 탤런트 시험에 응시하게 된 박원숙씨는, 당시 탤런트 공고에는 20세 이상만 지원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열의를 가지고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심사위원은 박원숙씨에게 이러한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당신은 집에 가서 아기를 낳아야 합니다. 시험을 통과하든 말든, 이 시간에는 아이를 낳아야 합니다." 박원숙씨는 이후 만삭의 몸으로 집에 돌아가서 아들을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MBC 공채 시험에 도전한 박원숙씨는, 시댁 반대를 뿌리치고 1970년 MBC 탤런트 공채 2기에 합격하여 한혜숙, 양정아, 김자옥씨 등과 함께 연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박원숙씨는 이때 유일한 유부녀였습니다. 이때 박원숙씨의 별명이 "3000대"였는데, 경쟁률이 무려 3천 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 시기에는 유부녀가 신인 탤런트로 성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후, 박원숙씨의 수입은 변동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제대로 이러다 할 직업도 없이 무조건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악세서리, 운동복, 제조, 시내 장식용품 등 남편이 하는 사업마다 실패를 하면서, 박원숙씨는 남편이 보낸 돈을 당초에 당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박과 여자 문제까지 터져 결국 1981년 합의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3년 동안 박원숙씨는 솔로 생활을 했지만, 아들을 위해 3년 만에 다시 재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남편에게는 이미 다른 여자가 있었으며, 그 후 불과 6개월 만에 다시 이혼하게 됩니다. 이후 5년간의 독신 생활 끝에 박원숙씨는 1989년 아랜딘에서 사업을 하는 교포 사업가 김씨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혼 이후 두번째 남편도 똑같이 사업과 여자 문제로 박원숙씨를 괴롭히기 시작해 결국 빚을 지게 되며, 1995년 이후 나가게 됩니다.


박원숙 씨는 총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혼 외도 남편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었으며 막대한 빚을 진 남편들로 인해 채권자들이 방송부까지 찾아와 돈을 갚으라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더해 전 남편과 그의 친구까지 자신의 혐의로 용산경찰서에 고소 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박원숙 씨는 전 남편이 사업을 하다 부도를 내는 바람에 20여년 동안 연예활동을 하면서 모든 재산을 잃게 되었으며, 드라마 출연료까지 전부 압류당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혼 후에도 전 남편이 박원숙 씨 명의로 은행에서 6천 300만원 짜리 당좌 수표를 발행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또 부도를 낸 것입니다. 

 

은행 측은 수표가 박원숙 씨 명의로 되어 있으므로 그녀가 책임져야 한다며 그녀를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느닷없이 전 남편의 친구에게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94년에 자신에게 4억원을 빌려준 뒤 아직까지 갚지 않았다는 혐의인 것입니다.

박원숙 씨로서는 그동안 전 남편에 대한 감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 남편이었다는 이유로 부도난 모든 출연료를 차압당하며 갚아왔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지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그 친구까지 맞고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박원숙 씨의 아픔은 이로써 끝나지 않았습니다. 2003년에는 하나뿐인 외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박원숙 씨의 아들은 TV 외주 제작사에서 PD로 일하고 있었으며,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러 회사 밖으로 나왔다가 주차 중이던 화물차에 치여 사망한 것입니다. 이 화물차에는 생수통이 가득 실려 있었는데, 생수 배달을 하는 운전자가 언덕 길의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은 채 볼 일을 보는 사이 생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화물차가 언덕 아래로 미끄러져버린 결과 이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아들의 교통사고 당시 박원숙 씨는 아들이 다니던 회사 사장에게 연락을 받았으나,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서는 그 어떤 일도 대수롭지 않았습니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벼운 교통사고인 줄 알고 그 때 차량 있어서 저녁에 갈까 생각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불안해서 가본 응급실 앞에 있던 아들 동료들의 얼굴이 눈물에 얼룩져 있고, 누구하나 차마 자기의 눈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들의 죽음을 맞았습니다. 세 번의 결혼 실패 이후에 아들만 바라보고 살았던 박원숙씨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겁니다. 

 

아들이 숨진 후 간간히 손녀와 연락을 하며 슬픔을 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며느리가 재운 하면서 허락되지 않았죠. 새로운 가정을 지켜 주고 싶은 마음에 손녀와 이별한 것입니다. 그러나 방송에서 "언젠가 소녀가 다시 연락을 할지도 모른다" 하면서 전화번호를 한 번도 바꾸지 않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아들과 소녀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모습을 비춰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박원숙씨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유일한 혈육인 소녀와의 관계 마저 끊어지자 가면성 우울증에 걸렸고 복식으로 차중에 엄청 늘어났습니다. 체증은 물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아 뇌졸중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진단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박원숙씨는 죽기 전에 소녀를 만나 보고 싶은 것 외엔 아무런 소원이 없다고 했는데요.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현재는 외상 전공을 하는 소녀와 연락이 다 왕래하며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손녀와 헤어진 지 근 20년 만에 다시 만난 것입니다. 손녀에게 등록금을 주려고 했던 장학금을 받았다면서 등록금을 거절했다고 해요. 손녀에게 좋은 할머니로 기억에 남고, 자, 지금은 정을 붙이려고 애쓰는 중이라 합니다.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잖아요". 

 

현재 박원숙씨는 10여년 전부터 경상남도 남해로 내려와 살고 있으며 KBS 1TV에서 "통 3L - 연애인들이, 혜은이, 김영란, 김청씨와 함께하는 실버 동거 버라이어티 -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남의 로 내려와 살게 된 배경은 우연히 남의 로 놀러 간 후에 남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어 귀농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기구 하고 가슴 아픈 인생사를 겪은 그녀에게 자연이 주는 힐링이 삶의 의지가 되는 듯 합니다.


한 인터뷰에서 박원숙 씨가 재운 계획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보내주셨네요. 박원숙 씨는 예전에는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혼으로 인해 아픈 상처를 받고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서 새로 시작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어마어마한 일들을 겪었음에도 견디고 사는 박원숙 씨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로 힘을 얻으셨다고 합니다. 박원숙 씨는 지금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살며, 좋은 인연들은 여자들로도 만족한다고 하네요. 앞으로의 재운 계획은 없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박원숙 씨의 남은 인생이 웃음 꽃이 만발하게 피어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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